어느 날 멍하니 앉아만 있었던 오후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엔 좀 멍했어요.
퇴직하고 나면 뭔가 시원섭섭할 줄 알았거든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시원함도 섭섭함도 없이 그냥 멍…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어느새 한 달이 지나갔을 무렵,
아내가 한마디 했습니다.
“당신 요즘 아침밥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맨날 거실에서 리모컨만 들고 있네…”
그 말을 듣는 순간 화도 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스스로 돌아보니까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더라고요.
정년퇴직은 어찌어찌 예상했던 일이지만,
그 다음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는 게, 갑자기 훅 몰려왔어요.
평소엔 주말에 가족들이랑 밥 먹고 TV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이게 매일 반복되니까 지겨움이 아니라 허무함이 생기더군요.
내가 하루에 꼭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것,
누가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
그게 꽤 깊은 외로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우연히 본 전단지 한 장이 시작이었습니다
시장 가던 길, 구청 앞 게시판에서 노란색 전단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노인 일자리 참여자 모집 중’이라는 큼지막한 글씨에
왠지 모르게 한 번 더 읽게 되더라고요.
사실 처음엔 “내가 이런 걸 해야 하나…” 싶었지만,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돈을 벌겠다’보다는 ‘아침에 나갈 이유’가 생기겠다는 게
그날 저한텐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구청에 갔습니다.
근데 어이없게도, 주민등록등본을 안 챙겨갔더라고요.
머쓱하게 서류 미비로 접수도 못 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오면서
혼자 피식 웃었습니다.
예전엔 직원들이 이런 거 다 챙겨줬는데,
이젠 내가 내 일도 직접 못 챙기네, 싶었죠.
다시 마음 다잡고, 필요한 서류 꼼꼼히 챙겨서 이틀 뒤에 재방문했어요.
그날은 접수도 하고, 담당자와 상담도 했습니다.
어떤 유형이 있는지, 나이에 따라 제한이 있는지, 소득기준은 없는지
하나하나 물어봤습니다.
모든 게 낯설었지만, 뭔가 해보겠다는 의지가 생긴 건 그게 처음이었어요.
아침 8시, 조끼 입고 나가던 첫날
제가 맡은 일은 초등학교 앞에서 교통안전 도우미였습니다.
주황색 조끼를 입고, 손에 깃발을 들고 아이들 등굣길을 지켜주는 역할이었죠.
사실 처음엔 좀 어색했어요.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고,
아이들과 부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괜한 눈치를 보게 되더라고요.
첫날 아침, 교문 앞에서 서 있는데
한 아이가 저한테 밝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묘하게 마음이 뭉클했어요.
‘내가 뭔가 쓸모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느낌.
그전까진 집에만 있었으니까 그런 감정을 까맣게 잊고 있었거든요.
처음 몇 주는 다리가 아팠습니다.
평소보다 오래 서 있다 보니 무릎이 욱신거리기도 했고,
비 오는 날엔 우비 입고 나가는 것도 번거로웠죠.
어느 날은 새벽에 알람을 못 들어서
늦잠 자는 바람에 허겁지겁 나간 적도 있었고요.
그날은 아이 한 명이 “오늘 아저씨 왜 늦었어요?”라고 묻는데
괜히 미안해서 혼자 머쓱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점점 내 삶에 스며든 일의 의미
두 달쯤 지나자 이 일이 제 삶의 일부가 되어 있었어요.
집에서도 아내가 “오늘 애기들 별일 없었어?” 하고 먼저 묻고,
마트 갈 때면 “내일 비 온다니까 비옷 챙겨야지” 하고 챙겨줬습니다.
그냥 돈 몇만 원 받는 일이 아니었어요.
그 일을 통해 가족과의 대화도 자연스럽게 늘어났고,
무기력했던 제 일상에 ‘기다려지는 내일’이 생긴 거죠.
함께 일하는 분들과도 친해졌습니다.
어느 분은 73세인데도 하루도 빠짐없이 나오셨고,
어떤 날은 다들 끝나고 떡볶이 한 접시 나눠 먹으면서
손주 자랑, 건강 얘기, 텃밭 이야기까지…
이런 시간이 이렇게 소중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들 자기만의 이유로 이 일자리에 오셨더라고요.
외로워서, 건강 때문에, 혹은 용돈벌이로…
그런 각자의 사정이 모여서 매일 아침 길목을 지키는 ‘우리’가 된 겁니다.
잠깐의 공백, 그 후에 더 단단해진 마음
계절이 바뀌면서 사업도 종료되고, 잠시 쉬게 되었을 땐
다시 예전의 무료함이 몰려올까 걱정됐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제가 먼저 움직였습니다.
시니어클럽을 직접 찾아가 다른 사업 유형들을 물어봤고,
시장형 일자리도 하나 신청해봤어요.
이번엔 카페에서 일하는 유형이었는데,
손님 응대는 처음이라 약간 걱정됐지만
이제는 새로운 일을 해보는 것도 즐거워졌습니다.
가끔 실수도 하죠.
커피를 잘못 내리거나, 주문을 헷갈리거나…
그럴 땐 동료들이 웃으면서 “이거 다 처음엔 그래요~” 해줘서
덜 부담스럽습니다.
이 나이에도 아직 배울 게 있고, 배워지는 게 있다는 게
왠지 마음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내가 다시 살아간다는 느낌
요즘은 하루가 짧게 느껴집니다.
오전에는 일하고, 오후에는 동네 도서관도 가고,
손주 생일엔 케이크도 미리 준비해놓고요.
무엇보다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느낄 수 있게 된 게 큽니다.
예전엔 ‘나는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직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느낍니다.
아내도 요즘은 저를 보며 “활기 있어졌어요”라고 합니다.
그 말 한마디에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일을 한다는 게 단순히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내 일상을 다시 움직이게 한다는 걸
이제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 거죠.
내가 참여한 노인 일자리 활동들
처음은 낯설었지만, 하루하루가 특별해졌던 기록
참여시기 | 일자리 유형 | 주요 업무 내용 | 느낀 점 한 줄 정리 |
---|---|---|---|
2025년 3월~6월 | 공익형 (교통지도) | 초등학교 앞 등굣길 안전 지도 | 아이들의 인사가 하루를 밝혀줌 |
2025년 9월~12월 | 시장형 (시니어카페) | 커피 주문, 음료 서빙, 매장 정리 | 서툴러도 함께하니 즐거움이 생김 |
2025년 3월~6월 | 공익형 재참여 | 교차로 교통보조 및 안내 |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한마디가 큰 위로 |
2025년 9월~ | 사회서비스형 탐색 중 | 요양보조 또는 지역 돌봄 관심 | 다음엔 나눔 쪽으로 도전해보고 싶음 |
마음속에 남은 말, 그리고 지금 나에게
가끔 누가 물어봅니다.
“아니, 그 나이에 일자리 구해서 뭐 하세요?”
그럴 때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 자신을 잊지 않으려고요.”
누군가는 나이 들면 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직도 ‘필요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게 가족이든, 이웃이든, 아이들이든 간에 말이에요.
퇴직 후 허전했던 그 봄날,
그날 게시판에서 전단지를 보지 못했다면
아직도 거실 소파에 누워 채널만 돌리고 있었을 겁니다.
작은 용기 하나가 저를 다시 밖으로, 삶의 한복판으로 이끌어줬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아침이면 조끼를 챙깁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내 자리는 거기니까요.
내가 다시 살아간다는 느낌,
노인 일자리가 제게 준 건 바로 그거였습니다.